커뮤니티

뉴스레터


클래식 음악 산책 ( 16 )_ 김진흥 자문위원

2012-11-06 16:38:45
관리자

클래식 음악 산책 ( 16 )_ 김진흥 자문위원


 

세기적 테너가수 카루소와 파바로티 그리고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와 새로운 디바 안나 네트렙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카루소와 파바로티 그리고 영원한 프리마 돈나인 마리아 칼라스라는 가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이들의 이름은 20세기 인류의 성악 역사 중 한 획을 긋는 위대한 테너와 소프라노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새로운 디바로 떠오르고 있는 안나 네트렙코에 대하여도 이들의 생애와 활동에 대하여 살펴 볼까 한다.

 먼저 카루소 (Enrico Caruso :1873. 2 ~1921. 8) 1873 2월 이탈리아 남부 도시인 나폴리에서 가난한 집안의 7자녀 중 세번째로 태어났다. 음악과 무관한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카루소는 나폴리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노래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리톤으로 노래를 시작하면서 무명가수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고음을 극복하는 피나는 노력으로 테너로 음역을 바꾸면서 그의 오페라 가수로서의 성공에 대한 집념을 실현시켜 나갔다. 카루소는 1894 11 6일 나폴리의 누오보가극장에서 21세의 나이로 모렐리의 오페라 <라미코 프란체스카>에 출연하여 데뷔했는데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지휘자였던 빈첸쪼 롬바르디에게 발탁되어 그로부터 실질적인 오페라 수업을 받게 되었다 롬바르디는 팔레르모가극장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라 죠콘다>라는 오페라 작품에 주역으로 카루소를 등장시켜 오페라 가수로서의 출세의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 공연의 대 성공으로 인하여 밀라노, 부에노스 아이레스, 로마 등지에서 초청을 받게 되었고 새로운 오페라 스타의 출현을 당당히 알리게 되었다. 그의 나이 27세 때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극장에서의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출연을 계기로 다음해인 1901년에는 자신의 고향 나폴리의 산 카를로가극장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주요 오페라 하우스(가극장)을 섭렵한 그는 드디어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가극장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1902년 가을 시즌을 시작으로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20년 까지 카루소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그는 무려 607회의 오페라 공연출연의 기록을 세우면서 카루소 신화를 이루었지만 그런 강행군의 공연 일정이 결국은 그의 건강을 해치고 말았다. 카루소는 1920 12 24일의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오페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노래하기가 힘들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늑막염이 발병하여 건강 상태가 악화 되었기 때문이다. 1921년 봄이 되자 늑막염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치료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게되면서 카루소는 그의 고향 나폴리로 돌아가서 1921 8 2일 그의 나이 48세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90여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그의 목소리는 벨칸토 규범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풍성한 표현력,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기교, 뛰어난 연기력은 그를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추앙받고 후배 성악가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위대한 성악가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벨칸토(Bel Canto) 창법이란 18세기에 확립된 이탈리아의 가창기법으로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며 이는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 보다는 아름다운 소리, 부드러운 가락, 훌륭한 연주효과 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창법이다.

다음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1935, 10 ~2007, 9)는 이탈리아 북부의 모데나에서 제빵업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페라 애호가이며 아마추어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1955년 모데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모데나 오페라극장의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1961 26세 때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의 아킬레 피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그곳 시립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주연 로돌포 역을 맡으면서 테너가수로 데뷔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일약 세계 각국의 무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1968 33세 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라 보엠>을 공연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71년부터는 그곳에서 정규적으로 배역을 맡았다.

특히 1972 37세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 같은 고향에 같은 유모에게서 자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Mirella Freni :1935. 2 ~  이탈리아)와 함께 부른 <라 보엠>은 그의 대표적 명반으로 손 꼽힌다. 1970년대에도 작곡가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 등의 오페라 배역에 요구되는 벨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더욱 무게가 실린 창법을 바탕으로 드라틱한 역으로 레퍼토리를 넓혀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1982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콩쿠르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55세 되던 해인 1990년대 이후에는 로마 월드컵 전야제 때 흔히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 (Placido Domingo :1941, 1 ~ 스페인)과 호세 카레라스 (Jose Carreras  :1946, 12 ~ :스페인)와 함께 “3 테너 콘서트를 연 것을 시작으로 세계각국에서 대규모 관중을 동원하는 야외공연을 열었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높은 음역에서 멀리 뻗어 나가는 맑고 깨끗한 음색이 최대의 장점이며 지휘자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08.~1989.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은 클래식 음악가로 평가 받고 있다. 1977년 한국을 방문하여 독창회를 가졌으며 1993, 2000, 2001년에도 내한 공연을 가진바 있다. 2007 9 6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 있는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7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다음,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 12 ~1977. 9)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유명한 오페라 가수 가운데 하나이다. 그녀는 1923 12 2일 미국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1937 14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되돌아 왔으며 이듬해부터 아데네 국립음악원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칼라스는 1938년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산투차 역으로 데뷔했다. 그뒤 1947 24세 때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폰키엘리 (A. Ponchielli :1834 ~1886)의 오페라 <라 조콘다 (La Gioconda)>에서 조콘다 역으로 노래를 불러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때 부유한 사업가 메네기니를 알게 되었고 1949 4월에 그와 결혼하게 된다 1951 28세 때부터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하여 오페라 <노르마> <안나 보레나> <메디아>등 발굴되지 않은 명작에 출연하는 등 여기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그녀는 1958년 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맡게 된다. 1956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를 시작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을 공연하며 활약했다 1957 34세 때 베니스의 한 파티에서 메네기니와 칼라스 부부는 그리스 선박재벌 오나시스 (Aristotle Onassis :1906. 1 ~1975 .5)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 이후 카라스는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남편 메네기니와의 결혼 생활은 끝나버리게 된다. 1960년부터 61년 까지 그녀는 무대에 서는 것을 포기하고 오나시스와 함께 화려한 상류 생활을 즐기는데 집착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와 결혼하고자 하였으나 1968년 오나시스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게 된다. 칼라스는 그 이후에도 공연활동을 하기는 하였으나 얼마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이후 말년에는 파리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977 9 54세의 나이로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마리아 칼라스는 폭 넓은 성역과 완벽한 가창력, 뛰어난 기교 그리고 훌륭한 무대 연기로 20세기 프리마 돈나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녀가 레코딩 한 음반은 수 없이 많으며 그 어느 것이나 모두 명반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 안나 네트렙코 (Anna Netrebko :1971. 9 )는 금년도 41세 나이로 세계오페라의 최고의 신델랄라를 넘어 새로운 디바로 군림하고 있는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이다. 2칼라스이라고도 불리운다. 안나 네트렙코는 1971년 러시아의 남부 크라스노다르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했다. 재학중이던 199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글린카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키로프 오페라에 입단했다. 본격적인 데뷔는 1994 23세 때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키로프 오페라에서 공연했다. 1995년 키로프 오페라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공동으로 제작한 러시아 민속음악가 글린카 (1804 ~1857)의 대표적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에서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199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리사이틀을 열었으며 1999년 이후에는 워싱턴오페라, 코벤트 가든, 라 칼라스, 잘츠부르크 퍼시티발 등 세계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 섰고 2002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데뷔했다 그녀가 공연한 주요 오페라를 보면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 <리골레토>의 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사랑의 묘약>의아디나, <라 보엠>의 무젯타 그리고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렛타,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역 등 수 많은 작품에 주인공으로 유수한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그때마다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빋았다. 이는 그녀가 기본적으로 노래실력이 출중하기도 하지만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안나 네트렙코는 2002년 메이져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마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두장의 솔로음반을 발매했는데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로만 구성된 두번째 음반 “Sempre Libera (언제나 자유롭게)“ 2005년 에코 클래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러시아 퓨틴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예술부문 국민훈장을 수여 받았다. 특히 유명한 지휘자 롤란도 비야손과의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라트라비아타>공연은 21세기 오페라 영상물의 고전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2007 5월에는 카네기홀 데뷔공연을 가졌고 9월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역을 다시 맡아 공연하는 등 그녀는 타임지에 의해 2007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타임 100)로 선정되었고 또한 미국 음악저널 뮤지컬 아메리카에 의해 “21세기의 천재적 수퍼스타로 인정 받았고 2008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 되었다. 또한 AP통신은 그녀가 “21세기의 새로운 디바로 군림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안나 네트렙코는 2006 7월에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부여받고 현재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거주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