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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산책 ( 14 )-김진흥 자문위원

2012-09-07 17:40:08
관리자

클래식 음악 산책 ( 14 )

 

20세기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   -김진흥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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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피아니스트를 이야기 할 때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Vladimir Horowitz )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Artur Rubinstein )을 말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전 세계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로부터 무한한 찬사와 존경을 받으며 빼어난 연주기교와 투철한 음악성을 겸비하였을 뿐 아니라 최고의 연주해석으로 인정받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 할 수 있다. 또한 호로비츠는 83, 루빈스타인은 90세 까지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며 이 두 사람은 17세의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같은 시대에 살았던 라이벌이기도 하며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귀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주는 너무 다르다 할 수 있다. 호로비츠의 연주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연주는 숨소리는 물론이려니와 음표 하나 하나의 울림과 쉼표까지 듣는 이로 하여금 머리카락이 쭈삣 서리게끔 하는 긴장케 하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반면 루빈스타인은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따스한 미풍과도 같다.

   그러면 두 사람의 생애와 연주 여행에 대하여 소개코저 한다.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 1904.10~1989.11) 1904 10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전기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12세 때 키예프 음악원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그는 연주보다는 작곡을 더 좋아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가난하게 되어 하리코프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시작 하였다, 그의 명성은 그가 20세 때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서 23회나 되는 독주회를 가지면서 총 200곡이 넘는 작품을 한 곡도 중복하지 않고 연주하였다고 한다. 1925 21세 때 베를린에서 첫 유럽 연주회를 시작으로 유럽 각지를 연주여행을 하였으며 1928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으로 미국에 데뷔하는 등 연주여행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당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 : 1867~1957 이탈리아)의 지휘로 황제를 협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33년 그의 딸 반다와 결혼했으며 1944 40세 때 미국에 귀화 하였다. 그의 다이나믹한 연주는 큰 감동을 주었으며 특히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해석에 뛰어 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낭만주의 전통을 지녔으며 흠 잡을 데 없는 정확한 기교와 관현악과도 같은 힘을 주었다
   
1953년 무대에서 완전히 은퇴하였으나 음반제작은 계속하였다. 1965 61세 때 12년간의 공백끝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재기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 당시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한 입장권을 받기 위하여 1500명이나 밤샘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더욱이 이들 입장객들은 대부분이 피아노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1978년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 1899~1985 헝거리)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3번으로 미국 데뷔 50주년 연주회를 가졌으며 그 후 1982 31년 만에 유럽 연주여행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1986년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1987 83세 때 베를린 연주를 비롯하여 밀라노에서 줄리니 (Giulini: 1914~2005 :이탈리아) 의 지휘로 생의 마지막 협주곡 레코딩을 남긴 뒤 1989 85세에 그의 화려한 생애를 마감했다.
  
호로비츠가 남긴 대표적 음반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면 토스카니니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3>”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카네기홀 컴백 리사이틀” “슈만의 <어린이 정경>”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메피스토>” “호르비츠 인 베를린등이 있다.

   다음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 1887.1~1982.12)은 폴란드 로지에서 태어났다. 1887년에 태어나 1982년 까지 95년을 살며 90세 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대단한 노익장을 과시했고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작곡가의 수 많은 곡을 연주하였으며 그의 연주는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피아노 선율을 들려준 거장 중의 거장이었다 루빈스타인은 어릴적부터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 지는데 특별히 연습도 없이 악보를 한번 만 보고 바로 연주회에서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루빈스타인이 가지고 있는 천재적인 잠재력을 처음으로 발굴하고 인정해 준 사람은 요아힘 (Joseph Joachim: 1831~1907: )이었다. 요아힘은 당시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1900 13세 때 베를린에서 요아힘이 지휘하는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1904년 파리로 건너간 루빈스타인은 그곳에서 당시 프랑스 음악의대가인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을 만나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06 19세 때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고 이 후에도 미국에서 몇번의 공연을 가졌다. 그 당시에는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던 같다.

  루빈스타인은 전쟁에도 참전하였다. 1차대전 중엔 토역관으로 근무하면서 (8개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할수 있었다 함) 군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으며 이 때 군에서 복무했던 사람으로 이자이 콩쿨로도 유명한 바이올리스트 유진 이자이 (Eugene Ysaye :1858~1931 벨기에)가 있었다. 1921년부터 미국에서 본격적인 연주여행을 하며 미국 전역에서 명성을 쌓아 갔으며 1937 50세 때부터 미국에 정주하여 1946년 시민권을 얻었다. 그의 연주는 모든곡에서 균형잡힌 구조속에서 어택이나 음색에 의하여 선율을 조성하였으며 풍부한 음량과 변화가 많은 음색을 갖춘 20세기의 대표적 피아니스트로 그의 연주방법은 지금도 인정 받고 있다. 또한 쇼팽, 드뷔시, 라벨, 프랑크, 로보스 등의 작품에 뛰어난 해석을 보였다. 또한 루빈스타인은 가장 인간적인 거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이점은 그의 따뜻한 품성과 인간미에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개런티를 받았으나 자신의 개런티를 자선단체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유태인이 었던 루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음악발전을 위해서도 힘썼다. 이스라엘에서 열린 그의 연주회 개런티를 아낌없이 기부하였고 훗날 이스라엘에선 그의 업적을 기르는 루빈스타인 콩쿨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57 70세 때도 한 시즌에 10회 이상 연주하는 등 마라톤 연주로 그의 연주 활동은 절정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상과 같이 그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았고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오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90세 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였으며 1982 95세의 나이에 빛나는 생애를 마감했다

 다음은 참고적으로 루빈스타인과 같은 이름의 유명한 음악가가 있는데 러시아의 안톤 루빈스타인 (Anton Rubinstein :1829~1894) 그는 러시아 음악의 아카데미즘을 확립한 작곡가, 음악교육가로 평가 받고 잇으며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Rikolai Rubinstein :1831~1881) 은 평생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장을 지내고 러시아 음악계의 명인이자 지휘자로서 활발하게 활약하였다.  ()